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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43. 고려는 중국의 역사다.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1.12.27
  • 조회수 : 162

2021-43. 고려는 중국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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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계승되어온 후계들과 일본유학으로 일본의 교육을 받아 양성된 학자들이 친일파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이 조작하여 만든 환단고기,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기, 이조실록같은 책으로 공부하여 그들에게 종속되거나, 친일파의 우군이 된 재야학자들로 친일파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강단학자나 재야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지금도 일제의 식민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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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려는 현토군에 있었다.


1. 현토 땅

『“고려는 원래 고구려다. (고구려는)우공이 나눈 9주중의 기주에 속한 땅이다. 주나라 때는 기자국이고한나라 현토군 땅이다요동에 있으며 다 부여의 별종이다평양성이 국도이다한나라, 위나라 이래 항상 관직과 공물로 통상했는데 자주 변두리를 침구했다. --- 장흥 중에 권지국사 왕건(王建)이 고구려를 계승했는데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 이에 왕건을 현토주도독충대의군사로 세우고 고려국왕으로 봉했다. --- 아들 가 권지국사가 되었다. 주나라 광순원년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 이에 소를 특진시켜 검교태보사지절현토주도독대의군사고려국왕으로 했다. 현덕2년 또 사신이 조공하니 개부의동삼사검교태위를 더해주고 또 더하여 태사로 했다.(高麗 本曰高句麗. 禹別九州屬冀州之地. 周爲箕子之國. 漢之玄菟郡也. 在遼東蓋扶餘之別種也. 以平壤城爲國邑. 漢,魏以來常通職貢亦屢爲邊寇. --- 長興中權知國事王建. 承高氏之位. 遣使朝貢. 以建爲玄菟州都督充大義軍使 封高麗國王. --- 子昭權知國事. 周廣順元年. 遣使朝貢. 以昭爲特進 檢校太保使持節玄菟州都督大義軍使高麗國王. 顯德二年又遣使來貢. 加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 又加太師.---”)』(송사권487. 열전346외국3.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참고)

(해설)

① 고려는 원래 고구려다.

고려는 고구려 땅을 계승했으므로 고구려 땅이 고려 땅이다. 그래서 장흥 중(5대후당 명종: 930-933)에 권지국사 왕건(王建)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한 것이다.


기주(冀州)에 속한 땅이다주나라 때는 기자국(箕子國)이고한나라 현토군 땅이다요동에 있으며 다 부여의 별종이다평양성이 국도이다.“

기자족의 본거지는 현토군 땅이고 후에 기자국은 낙랑군 땅이다. 다 기주에 속한 땅이다. 현토군이 요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중국 감숙성이다. 그러므로 만주가 요동이라고 하는 것은 조작된 가짜다.

평양은 기자조선, 위만조선, 고구려의 도읍이며, 고려의 도읍인 개성의 남쪽에 있으므로 고려의 서경이 아니다.

고려 때 평양을 서경이라고 한 것은 고려가 거란의 침략을 피해 동쪽 감숙성 경주(개봉)로 천도했을 때의 서경이다.

감숙성의 경주는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하고 개봉으로 고친 이름이다. 그런데 역사조작으로 감숙성의 개봉을 하남성의 개봉으로 이동조작한 것이다.


기주(冀州)와 평양” :

기주는 원래 감숙성이다그런데 기록으로는 순임금 때부터 하남성북쪽의 산서성과 하북성이라고 조작 되어있고 치소가 산서성남부 진양하남성 동북 안양하북성 남부 한단 등으로 이동돠었다.

기주는 요동의 위만조선 땅이므로 감숙성인데 고조선부터 전부 동쪽으로 이동 조작하여 기자조선도 하북성인 것처럼 조작되었다.

고구려는 요수의 동쪽에 있었으며 기자의 땅, 위만조선의 땅, 한나라 현토군과 낙랑군 땅인데 고려의 도읍은 현토군 관내의 개성이고 개성남쪽에 있는 평양은 낙랑군이며 고구려 도읍이다.

고려의 서경이 평양이라는 것은 고려가 거란의 공격을 피해 동경인 감숙성 경양(요나라 때의 최초의 개봉)으로 피난한 후에 평양이 서남쪽이기 때문에 일컬어진 것이다. 이 개봉이 지금은 하남성 동북으로 이동 조작되어 있다.

순임금 때 우사공이 나눈 9주는 요수 서쪽의 청해성, 신강성인데 요동의 감숙성 고구려 땅으로 이동 조작했다가 다시 요, 순, 우의 도읍을 산서성 남부로 이동 조작한 것이다. 후에 또다시 고구려를 하북성지역으로 이동하고, 백제를 산동성지역으로 이동 조작했는데 이것을 일제가 한반도역사로 둔갑시킨 것이다.

기자국(箕子國), 위만조선한나라 현토군요동 땅평양은 감숙성 서황하(요수동부 땅을 떠날 수 없다.

송나라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왕건에게 “현토주도독“을 봉작으로 주었으므로 고려의 건국지는 감숙성 고구려 요동 땅의 현토지역을 을 떠날 수 없다.

한국사는 요동요서와 한4군의 위치만 정확하게 찾으면 이런 잡다한 역사를 연구할 필요조차 없이 명명백백해 진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인들은 요동요서와 한4군의 위치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요동요서와 한4군은 현존하는 조작된 역사책으로는 진짜위치를 규명 할 수 없으므로 진짜위치를 추적해야만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렇게 어려운 공부를 한 사람이 없어서 현재까지 정확한 위치를 아는 역사학자가 없다. 필자의 저서 “요동요서와 한4군”을 참조하기 바란다. 요동요서를 알지 못한 채 역사를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사와 중국사는 역사적 가치가 전혀 없는 소설도 못되는 공상만화다. 이런 것을 높이 받드는 것이 한국인들이니 한국인들의 의식구조가 철저한 식민사대주의라는 뜻이다.

기록상 고려의 건국은 918년으로서 중국의 5대10국 시대이다. 왕건의 건국지는 감숙성 고구려 요동 땅 - 당나라 땅 - 발해 땅(남경남해부) - 토번 땅 - 발해 땅(서경압록부)- 요나라 땅(907-1125)으로 바뀌었고 고려 땅으로 이어졌다. 이 중에서 하나의 나라 위치만 명확하게 찾으면 역사전체를 알 수 있다.


권지국사 왕건을 현토주도독충대의군사로 세우고 고려국왕으로 봉했다.“

고려시조 왕건(918-943)의 최초 직함은 권지국사이다. 고구려와 고려가 다 한나라 때의 현토군 땅에 있었음을 증명한다. “권지국사, 현토주도독”의 봉작은 시조 왕건(918년)부터 6대성종(981-997) 때까지 계속되었다.

조작된 한반도 한4군의 현토군은 두만강-압록강지역인 함경도이다. 그러므로 고려를 한반도라고 한다면 고려의 개성과 경주가 두만강 이남의 함경도에 있어야 한다. 그런대 개성은 엉뚱하게 황해도에 있고, 경주는 터무니 없게도 경상도에 있다.


2. 현토 땅

“개보5년, 소가 죽었다. 그 아우 치가 지국사가 되었는데 9년 주가 (송나라에) 사신 조준례를 파견하여 토산물을 바치니 주에게 검교태보현토주도독대의군사태보의 작위를 내리고 고려국왕으로 봉했다. --- 태평흥국 7년 주가 죽었다. 사신 김전을 파견하여 금, 은 --등을 바쳤다. ---치를 검교태보현토주도독충대순군사를 제수하고 고려국왕으로 봉했다.(開寶五年 昭卒, 其弟治知國事. 其子伷權領國事. 九年伷遣使趙遵禮奉土貢. 授伷檢校太保玄菟州都督大義軍使太保封高麗國王--- 太平興國 七年伷卒, 遣使金全奉金銀 --- 治檢校太保玄菟州都督充大順軍使封高麗國王)“(주伷: 투구, 맏아들)

(송사권487. 열전346외국3.)

(해설)

개보5년 송의 태종(976-984), 현토주도독: 시조왕건, 소(昭: 고려4대왕, 949-975년). 주(伷: 고려5대왕, 975-981) 치(治: 고려6대왕, 981-997)

고려는 고구려 땅을 계승했는데 위에서 도읍지가 한나라 현토군 땅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구절이 5개나 있다. 그런데 한반도와 동북 3성에는 한4군을 설치한 사실이 없으니 고려는 중국의 나라다. 만약에 한반도 한4군설이 맞다면 현토군이 함경도이므로 고구려의 집안(국내성)과 환도성 그리고 고려의 개성과 경주가 함경도에 있어야 한다. 현재 고구려의 집안과 환도성은 만주에 갖다 놓았고, 고려의 개성은 황해도에 갖다 놓았고 경주는 경상도에 갖다 놓았다. 어떤 근거로 갖다 놓았는지 알 수 없다. 황해도는 현토군이 아니므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동 조작된 100% 가짜다.

---------------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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