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機포럼 安保時論 18-22회, 평화의 환상이 가져온 결말
평화라는 달콤한 말을 믿었던 종말
2018. 12
文 會 穆
安民硏究所長
僞裝平和에 속고, 돈으로 平和를 사려던 시도가 결국에는 自滅의 길을 가거나 滅族들 당한 사례를 역사에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평화를 구걸하다 멸망한 중국의 宋나라를 예를 들 수 있다. 1004년 요나라의 침공에 송나라는 은과 비단으로 굴욕적인 화평 조약을 맺고 일시적으로 안정을 유지했다. 1125년 金나라 태종이 또 다시 宋나라를 공격하여 평화를 제안하자, 금은으로 화평을 구걸하였다. 송나라 조정에는 平和主義者들이 득세하고 대비태세가 부실한 가운데 2년 후인 1127년에 金나라 태종이 태평세월을 구가하던 송나라를 침범하여 왕을 죽이고 송나라 백성을 노예로 삼았다.
1614년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간에 오사카 전투가 벌어졌다. 위장평화 공세에 속아 정전협정을 맺은 히데요리는 滅族을 당하여 도요토미家의 종말을 고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1938년 히틀러의 독일과 영국 체임벌린 수상이 합의한 뮌헨회담이다. 히틀러는 겉으로는 평화를 부르짖고 영국 수상 쳄벌린은 히틀러의 말을 믿고 체코의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양보한 후 “이제 우리는 확실한 평화를 얻었다”고 선포하였으나 히틀러는 종래 2차대전을 일으켰다.
1973년 레둑토와 헨리 키신저의 파리 정전협정이다. 레둑토의 위장평화 공세에 속은 헨리 키신저는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정전협정 후 미군 철수가 시작 됐고, 2년 만에 월맹은 자유 월남을 침공해 수백만을 학살하고 사회주의 베트남으로 통일을 이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체결한 1993년과 1995년의 오슬로 평화협정을 둘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3년과 1995년, 서로를 인정하기로 한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 곧 평화협정은 무력화 되고 지금도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세력 간 유혈사태는 끊이질 않고 있다.
이들 사례의 교훈은 安保를 소홀히 하고, 平和라는 달콤한 말에 매달린 결과 어떤 종말을 맞게 되는지를 잘 보여 준 것이다.
일본의 오사카성 전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오사카성 전투의 진행상황을 보면, 한반도에도 그런 상황이 반복되지나 않을까 우려스럽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죽기 전 5大老, 5奉行에게 6살난 어린 아들 히데요리(豊臣秀賴)의 후사를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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