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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草 斷想 22-38회, 네가 한 말은 반드시 너를 겨냥한다
  • 작성자 : 문회목
  • 작성일 : 2022.05.18
  • 조회수 : 236


<愚草 斷想 22-38회, 네가 한 말은 반드시 너를 겨냥한다

​ ​ 22. 5. 18(수)

愚草 文會穆

全筆家

茶山의 與猶堂의 깊은 뜻

茶山 丁若鏞은 오랜 관리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1800년 3월이었고 6월 정조대왕이 타계했다. 다산은 그동안의 생활을 반추하면서 與猶堂이란 당호를 지었다. 이 당호를 지은 두 달 후 다산은 옥에 갇혔고 18년간의 유배생활이 시작됐다. 다산의 나이 49세 때 일이다. 다산은 기나긴 유배생활을 끝내고 고향 집 여유당으로 돌아와서 18년간 말년까지 거주했다. 자신의 문집도 <與猶堂集>이란 이름으로 펴냈다.

여유당은 다산이 직접 지은 與猶堂記에서 도덕경에서 따온 것임을 밝혔다.

與兮若冬涉川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망설이고

猶兮若畏四隣 사방에서 엿보는 듯 조심하고 경계하라

여기서 앞 글자 두 자를 따서 여유당 與猶堂으로 지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老子 道德經> 15장에 與가 아닌 豫로 표기돼있다.

豫와 猶는 원래 짐승이름인데, 의심과 겁이 많아, 소리만 나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뜻한다. 다산이 왜 예豫를 여與로 사용했는지 연구자들의 의견이 분분하고 설명이 명쾌하지 못하다. 고대 중국에서 豫와 與는 호환해서 사용되는 글자였다는 주장이 있다.

與猶堂 당호와 관련하여 몇 가지 생각할 만 것이 있다.

다산은 유학자였지만 당호를 공자의 논어에서 찾지 않고 노자의 도덕경에서 찾았냐는 것이다. 당시 기존 유학사상에 새로운 해석을 하면 斯文亂賊으로 몰려 목숨이 위태로워 노자 도덕경을 대놓고 인용하지도 못했던 상황에서 용기를 내어 노자사상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나타낸 점에서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겨울에 시내를 건너자면 얼어붙을 듯 차거운 물이 겁나고, 사방에서 자신을 엿보는 것을 알면 그 적대적인 시선이 두려운 것이다. 이렇게 두렵고 조심한다는 뜻으로 여와 유라는 글자를 끌어다가 당호를 삼았으니, 그가 이 세상을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던 현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역설적으로 다산의 주요 저술은 유배 기간 중에 지어진 것들이다.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六經四書>에 대한 연구, <經世遺表>· <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하는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만약 다산이 귀양 가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역사의 최고의 역작들을 남길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뒷날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아들 정학유丁學游에게 말과 행동을 의심받지 않도록 간곡하게 당부하면서, 숨김이 없게 하여 근신함으로써만 하늘을 섬기고 집안을 보존할 수 있음을 훈계하였다

자신에게 가해진 비난과 의심의 화살이 집중된 뼈아픈 경험을 가졌으니, 말 한 마디 편지 한 장에서도 의심을 사지 않도록 되돌아보고 조심하도록 당부한 것이다.

그리하여 집안의 편지도 열흘마다 점검하여, 남의 눈에 걸릴 만한 것은 정도에 따라 불에 태우라고 지시해야 할 정도로, 살얼음판 위를 딛고 가는 위기 속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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