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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草 斷想 22-63회, 삼복과 보신탕
  • 작성자 : 문회목
  • 작성일 : 2022.07.10
  • 조회수 : 216

<愚草 斷想 22-63회, 삼복과 보신탕

22. 7. 5(화)

愚草 文會穆

全筆家

식용문화도 역사성을 가진다

三伏을 정할 때에 夏至 지나고 세 번째 돌아오는 庚日부터 기준으로 삼았을까.

六十甲子 중에서 庚子, 庚寅, 庚辰, 庚午, 庚申, 庚戌이 바로 庚자 들어가는 날이다. 이 庚은 가을에 내리는 서리, 살기, 결단력, 단호함 등을 상징한다. 동물로 따지면 白虎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天干이다.

白虎는 칼을 잡는 武人들이 숭배하던 동물이고, 호랑이 뼈는 사악함과 귀신을 쫓는 부적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강력하고 살벌한 의미가 庚에 들어 있다. 우연인지 우리역사에서 庚자 들어가던 해에 변화가 많았다. 숙종 대에 남인들이 몰락했던 해가 庚申년이고, 6·25가 庚寅년이고, 4·19가 庚子년이고, 광주사태가 庚申년에 일어났다.

三伏에 伏은 엎드린다는 뜻이다. 즉 복날에는 庚과 같은 강력한 기운도 더위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나운 백호도 항복한다는 의미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伏자의 구조가 흥미롭다. ‘덥다’는 의미와 ‘엎드린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伏자에는 개가 옆에 붙어 있는 것이다.

伏자에 개가 붙어 있었기 때문인가.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조선시대에 개는 중요한 동물성 단백질 섭취원이었다. 개는 식용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소나 돼지는 중요한 재산이므로 쉽게 잡아먹을 수 없었으나, 개는 기르는데 어려움이 적고 가축이었으므로 부담이 적었다. 소화흡수가 잘 되는 개고기는 여름철에 배고팠던 조선시대 민초들에게는 최적의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셈이다. 남쪽에 비해 식량이 부족했던 북쪽에서 개고기 요리가 더 발달한 것이 다 이런 이유이다.

여러나라에서 개고기를 먹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논란이 심하다. 삼복이 가까이 오면 개식용 반대운동이 거세질 것이다. 서민문화는 쉽사리 바꿔지지 않는 사안이다. 또 현명한 지혜에 맡길 수 밖에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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