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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나라는 장래가 없다.
  • 작성자 : 권대우
  • 작성일 : 2012.09.26
  • 조회수 : 8284

공자님의 말씀에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라는 말이 있는데 요즈음 일본이 하는 행태를 보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일본인들, 특히 일본 정치인들의 의식 속에는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을까?

그들도 사람인데 그러면 왜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지 못하는 것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일본 전국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에서 찾고 싶다. 자고나면 서로 치고 받고 죽이고 살리고 했든 살벌한 시대의 봉건 영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전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치열한 외교전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런 와중에서 웬만해서는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에는 인색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자칫 잘못을 인정했다간 망하든지 할복(割腹)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급적이면 애매모호하게 말함으로서 나중에 빠져 나갈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체질화되었으며 그게 국민성으로 굳었다고 본다. 이것이 일본인들의 혼네(本音)과 타데마에(建前)이란 말의연원이 아닐까?

 

그 동안 일본이 사과라고 한 말을 보면 다 그렇다. “과거 우리나라와 우리국민들이 귀국과 귀국 국민들에게 입혔던 고통과 피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한다.” 라고 하면 될 것을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하는 식의 애매한 표현을 하는 것도 다 그런 연유라고 본다. 무엇이든 속에 든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우리 국민들로 볼 때는 도저히 이해 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런 표현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 한 것 같다. 그러니 “그만큼 사과 했으면 되었지 언제까지 사과 하란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하다.

 

그러면 남의나라 국권을 침탈하고 국모를 시해하고 어린 소녀들을 성노예로 강제 동원 하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전혀 죄의식이 없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행태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에도막부(江戶幕府)를 뒤집어엎고 대정봉환(大政奉還)의 주역이었든 죠슈번( 長州藩)의 존왕양이 사상운동의 시조 요시다쇼인(吉田松陰)이 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서 국수주의 교육을 해서 길러낸 인물들이 후일 명치유신의 주역이 되었다. 이들이 화혼양재(和魂洋材)를 앞세워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를 흉내 내며 대륙 침략에 열을 올린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그 과정에서 행한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해 죄의식이 있을 리가 없다. 그 모든 행위가 대화민족들 위한 행위였으니까.

 

마쓰시타 전기(松下電器)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쓰케(松下幸之助)가 설립한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출신인 노다요시히코(野田佳彦) 수상의 최근 발언을 보면 쇼카손주쿠(松下村塾) 출신의 유신 지사들의 언행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마쓰시타 고노쓰케(松下幸之助)와 같은 탁월한 인물이 겨우 일본이란 섬나라의 시마쿠니곤죠(島國根性) 정도 밖에 부릴 줄 모르는 속좁은 인물을 길러내려고 정경숙(政經塾)을 설립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본의 지도층이란 사람들의 그릇의 크기가 겨우 좁쌀만 한 것을. 그들이 아직도 전국시대의 봉건 사족(封建士族)의 안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이 절대로 세계의 지도적인 국가가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필자가 생각에는 일본이 개과천선해서 진심어린 사과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일본사람들은 오랜 세월들 두고 혼네와 타데마에란 어법이 체질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처럼 속에 든 말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하는 것을 보면 마치 철없는 아이처럼 보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나 일왕의 사과요구 발언은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일본사람들에게는 일국의 국가 원수로는 해서는 안 되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경악할 만한 대사가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과이불개 (過而不改) 하지 않는 바로 그것이 잘못인데 (시위과의 是謂過矣)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앞으로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過不貳)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다시 그런 똑 같은 짖을 되풀이 하겠다는 무언의 다짐이라고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 한 것과 일왕의 사과를 요구 한 것이 외교적인 실책이란 논리는 의미가 없다. 늑대에게 어린양을 잡아먹을 구실은 얼마든지 만들면 되는 법이니까.

“못된 놈 옆에 있다가 정 맞는다.”고 우리나라가 이사 갈 수도 없으니 이런 일본 곁에 있으면서 정 맞지 않으려면 우리가 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특히 일본처럼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잔인한 몰염치한 나라를 상대하려면. 국제 사회에서는 힘이 곧 정의다. 우리가 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우리 힘만으로 모자라면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다시는 당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다행히 중국이 100년전 중국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도 그런 중국을 의식한다면 다시는 가쯔라 테프트 밀약과 같이 어설픈 수로 우리를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튼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나라는 장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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