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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소개> 최길영 회원의 수필
  • 작성자 : 창강
  • 작성일 : 2013.03.31
  • 조회수 : 9589

 

가. 당선소감의 글 일부

 

글을 제대로 써보고 싶어서 ㄱㄴㅁㅎㅇ을 찾아갔습니다. 덕분에 등단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쓰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수필을 배우는 이유가 그래서입니다. 언젠가 글을 쓸 수 있을 때 그 글을 쓰겠습니다.

 

정약용의 말입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다"  쓰기위해 쓰는 글이 아닌 써야하기에 쓸 수빢에 없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나. 심사평의 글 일부

 

수필은 산문과 언어미학의 문학이다. 산문은 논리성과 과학성에 있다. 그러므로 수필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갈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최길영의 수필<시간 보내려구요>는 일상의 평범한 언술에 기초하여 이를 자기화하고 의미를 해석함으로써 평범 이상의 세상살이의진리를 발견함으로써 독자에게 주는 설득력이 강한 작품이다.

 

산에서 우연히 조우한 노인의 한마디가 화자에게는 심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일상인의 한마디에 담긴 세상살이의 철학은 그로 하여금 시간에 대한 깊은 사색과 철리를 깨닫게 한다.

 

이만하면 좋은 수필을 쓸만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어 그에게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흔쾌히 신인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심사위원 : 문학평론가 엄현옥  한상렬)

 

 

 

다. 수필 신인상 당선작

 

 

시간 보내려고요

 

최길영  kychoe@naver.com 

 

“참 건강하시네요.”

여든 살도 넘어 보이는 노파가 등산을 하기에 인사말을 건넸다. “시간 보내려고요. 이렇게라도 다녀가면 시간이 잘 가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산에 온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고, 시간이 너무 안 가서 ‘시간을 빠르게 가게’ 하려고 산을 오른단다.

 

시간이라는 게 참 묘하다. 시간은 항상 일정한 속도로 간다. 그런데 우리가 현실적으로 느끼는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가지 않는다. 어떤 때는 빠르게 가고, 어떤 때는 느리게 간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시간이 빠르게 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은 느리게 간다.

 

대학 3학년 때 독일어회화를 배우러 다니다가 어떤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자연히 그녀를 만나는 목요일 저녁이 기다려졌다. 그녀를 기다리는 일주일은 한 달이나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갔다. 똑같은 목요일 오전에는 독일어원서강독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오는지 일주일이 하루 같았다. 일주일이라는 예습시간이 주어져 있었는데도, 매주 수요일에는 밤을 새워가며 독일어원서강독 예습을 해야 했다. 똑같은 일주일이었는데도 그녀를 만나는 독일어회화 시간은 한 달 만에 돌아오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고, 예습을 해야 했던 독일어원서강독 시간은 하루 만에 돌아오는 것처럼 짧게 느껴졌다. 시간의 흐름이 마음에 따라 다르게 느껴졌다.

 

한 젊은이에게 시간을 빠르게 가게 할 수 있는 단추가 있었다. 애인을 빨리 보고 싶어 단추를 돌렸다. 그러자 애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다. 단추를 돌렸다. 곧바로 결혼식을 했다. 아이들을 갖고 싶었다. 단추를 돌렸다. 그는 중년 남자가 되어 아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원하는 것이 생각날 때마다 단추를 돌렸다. 단추를 계속 돌리다보니 어느덧 그의 인생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자기의 인생이 끝나버린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노인이 되어 임종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때서야 그는 천천히 기다려보고 싶었다.

 

하인리히 스푀를의 『기다리세요』라는 작품의 줄거리다. 시간이 빠르게 가면 그만큼 인생도 빠르게 간다. 인생은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간이 빠르게 가기를 바랄 필요는 없다. 천천히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어떤 때는 시간이 빠르게 갔으면 좋겠고, 어떤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빠르게 가서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니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의 바람대로 시간을 마음대로 빠르게 가게 할 수도 있고, 느리게 가게 할 수도 있고, 남아도는 시간을 저장할 수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객관적으로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간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은 빠르게 가기도 하고 느리게 가기도 한다. 바빠서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빠르게 가고, 한가하여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시간에도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현상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빠르게 가서 괴롭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느리게 가서 괴롭다.

 

예전에 바쁘게 살았던 시기에는 시간이 빠르게 갔는데, 퇴직을 하여 할 일이 없는 요즈음은 시간이 느리게 간다. 시간이 빠르게 갔던 시기에는 하루 동안에 많은 일을 했었는데, 시간이 느리게 가는 요즈음에는 하는 일이 적다.

 

시간에 관한한 나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다. 시간이 남아돌아 시간 보낼 궁리를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시간이 모자라서 시간에 쫒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 일 없이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지 말아야 할 텐데 요즈음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날이 많다.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나 또한 산에서 만났던 노파와 똑같은 신세가 되는 것일까?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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