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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인생은 한 편의 영화다
  • 작성자 : rainbow
  • 작성일 : 2013.11.27
  • 조회수 : 9315

인생은 한 편의 영화다

 

왠지 일이 손에 안 잡힐 때가 있다. 그냥 시간이 무료하게 느껴지고 말이다. 그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나는 영화를 보러 간다. 물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는 기원이나 이발소를 찾거나 혹은 삶의 현장을 찾아 시장바닥을 둘러보거나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게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까.

 

영화관에 자주 가는 편이라고 말하면 적이 놀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의외의 사실에 나 또한 놀란다. 어떤 이는 “영화관 간지 십년도 넘어. 그리 할 일이 없어? 낮잠이나 자는 게 낫지.”라고 말한다. 내가 빙긋 웃으며 “난 지방이나 해외 가서도 가끔 영화관을 찾는 데”라고 응수하면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꿈을 잃은 것처럼 보여 측은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어차피 이상과 현실사이엔 큰 괴리가 있지 않은가. 누구나 소싯적엔 큰 꿈을 꾸지만 나이 들며 점차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현실을 알게 된다. 세상을 한번 바꿔보고 싶고, 부귀를 누리고 싶고,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도 해보고 싶지만 대개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다. 그렇지만 죽을 때 까지 그 꿈을 못 버리는 것이 우리네 삶일지 모른다. 개중엔 큰 용기를 내서 시도하다가 감방에 가거나 스캔들의 오명을 쓴 채 비극적 삶을 겪기도 하지만.

 

세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고 세상은 무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다. 어차피 우리의 능력과 역할은 제한적이고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과 욕망을 영화 속에서 이루고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니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롭고 메마르기 쉬운 일상에서 영화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인생무대의 지평선을 넓혀준다고 생각된다. 사실, 만원 안팎의 돈으로 두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시공을 넘나들며 그 속에 몰입되어 희열과 슬픔,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 않은가?

 

중학생 때던가, 몰래 들어가 가슴 졸이며 본 영화 ‘OK목장의 결투’, ‘드라큐라’, ‘무기여 잘 있거라’의 장면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흘러간 숱한 추억의 명화들-자이언트, 벤허, 십계, 대부(代父),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마의 휴일, 애수,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 황야의 무법자, 정무문 등-은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 삶을 풍족하게 살찌우는 것 같다. 마치 소중한 추억의 편린(片鱗)들이 나와 동화(同化)된 듯 말이다.

 

아쉽게도 예전에는 국산영화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국산영화의 의무상영일수를 정하는 ‘스크린쿼타제’가 있던 시절이니까. 개인적으로도 ‘별아 내 가슴에’, ‘만추(晩秋)’, ‘서편제’, ‘밀양(密陽)’ 등이 겨우 기억에 남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는 국산영화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 같다. 오히려 외화보다 더 대박이 터지고 관객 수가 천만을 넘는 경우가 많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 한류(韓流) 붐을 타고 최근 우리영화도 외국에서 특히 동남아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 않은가? 반면에 요즈음 수입외화들은 할리우드식 판타지(fantasy)나 좀비(zombi) 장르 또는 흥행성 오락물로 흘러 예전과 같은 명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얼마 전에는 모처럼 아내와 둘이서 영화 ‘관상’을 보러갔다. 역대 한국 영화중 10번째로 관객 수 9백만을 돌파한 영화다. 엊그제 열린 50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고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다. 조선시대 유명한 관상가(송강호)가 김종서(백윤식)를 도와 단종을 폐하려는 수양대군(이정재)의 역모를 저지하려다 실패한 이야기다. 수작(秀作)이다.

 

영화관을 나와 승용차 옆 좌석에 앉은 그녀가 묻는다.

“한명회가 당시 실존했던 인물 맞아요?”

“물론이지. 수양대군의 모사(謀士)였지. 두 딸을 예종과 성종의 왕비로 들이고 부귀영화를 누렸지. 압구정이란 이름도 당시 한명회의 정자에서 나왔어”

“나중에 연산군 때 부관참시를 당했지. 관상쟁이의 예언대로 ~ ”

 

그때 갑자기 옆 차가 내 차선으로 뛰어 들려고 시도한다. 깜박이 예고도 없이. 옆 차의 돌발적 운전에 화가 나서 앞차 뒤에 바싹 붙인다. 두 차의 신경전이 계속되자 그녀가 한마디 내 뱉는다.

 “당신, 선사연인가 뭔가 한대며? 먼저 양보 좀 해 봐요.”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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