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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소개> 무상보육 이후
  • 작성자 : 창강
  • 작성일 : 2015.01.18
  • 조회수 : 10081

글쓴이 / 한정석  <시사주간 미래한국 편집위원>

아마도 무상보육 이후, 어린이집 상황들이 개판 오분전일 거라는 것은 충분히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보육교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맞벌이 엄마들이 아니라, 그저 놀러 다니려는 엄마들이 아이를 맡겨놓고는 밤늦게 까지 술퍼먹고 애 안데려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가정을 해체해서 사회화하는 것은 레닌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것임은 이미 혁명의 기본 노선으로 주장된 바 있다.

...

'식탁의 사회화'로 일컬어 지는 무상급식과 어린이들을 국가가 보육해 사회주의 형 인간으로 개조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플랜이었다. 사회주의는 엄격한 이념의 통제속에서, 또 의식화된 혁명의 가치속에서 가족의 사회화를 추진하기 때문에 보육교사가 아이를 학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이념적 지향성이 없는 자본주의하에서 무상보육, 무상급식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무상보육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선함'을 추구하는 종교적 미션을 가진 교회나 사찰,성당과 같은 기관만이 가능하다.


교회의 목사, 성당의 신부, 사찰의 주지와 같은 이들이 책임자가 되어 믿음과 소명의식이 있는 이들을 선발해 보육을 맡기게 하고, 그들과 함께 신앙활동을 하며 끊임없이 정신적, 윤리적, 공동체적 유대를 가져야 그나마 열악한 보육환경에서 아동학대와 같은 행위를 막을 수 있다.


사회주의 방식의 저렴한 무상보육 배급시스템에서 어린이집 원장이 보육교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나?

사회는 공식적 제도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공식적 제도가 마치 바닷물에 잠긴 빙산처럼 더 크다.
그런 것이 관습적 지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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