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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소개> 국회라는 이름의 세탁기
  • 작성자 : 창강
  • 작성일 : 2015.03.16
  • 조회수 : 10476

국회라는 이름의 세탁기

글쓴이 /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 2015. 3. 16 

의원은 청문회 落馬 안 시키고 자기희생 없이 김영란法 통과… 정부 감독 않고 人力 공급해
갈등 만들고 民心 갈라 놓는 '高소음 低성능 세탁기' 국회여
시달리는 국민 불쌍하지 않나


지난주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를 보니 위장 전입은 이제 검증 리스트에서 제외된 모양이다. 입각한 현역 위원들이 공직 검증 과정을 간소화하는 공을 세웠다. 야당은 일부 대상 인물의 청탁(淸濁)을 문제 삼고 있으나, 어쨌든 인사청문회는 삼청교육대 시절 언론관을 가진 총리 후보를 포함, 현역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낙마한 적이 없는 요술 관문이 되었다. 그 문턱에서 누군가는 오물을 뒤집어쓰지만, 누군가는 오물이 묻은 채 경력 세탁이 되어 벼슬을 쓴다. 국회 청문회는 대상의 맑고 흐림을 가리기는커녕 있는 장점 없는 단점을 뒤섞어 뭐가 뭔지 모르게 만드는 성능 나쁜 세탁기를 연상시킨다.

험로를 뚫고 총리가 되신 분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당시 총리 후보 인준 표결이 부결됐다 하더라도 우리(국민)는 괜찮았다. 국무총리 낙마가 그리 생소한 일도 아닐뿐더러 총리 하나 없다고 국정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 상식이다. 국민에게는 트라우마도 국정 공백도 없는데, 여당과 야당의 정치 계산만 복잡하다. 만약 의회가 인준을 부결시켰다면 적어도 여론을 반영하는 의결 기구로서의 위상은 유지했을 것이다. 총리 후보는 또 내면 되지만, 의회는 아쉽게도 하나밖에 없다. 국민은 새 총리를 얻고 대신 국회를 잃었다.

그렇다고 국회가 늘 여론을 거슬러 왔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이해에 부합하거나 자신들이 빛나 보일 찬스에는 어김없이 여론을 방패로 삼는다. 얼마 전 '확신이 없음(우윤근 대표)'에도 불구하고 '여론에 밀려(김무성 대표)'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김영란법'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청렴 사회를 주도할 날카로운 칼 같던 법안이 의원들이 주물럭거리면서 부부 사이도 때려잡을 육중한 둔기로 변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그조차 피해가는 신출귀몰의 재주를 보였다. 의원들의 자기희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법안을 보며 국민은 정치의 왜소함에 다시 실망한다.

정당 지지율을 놓고 평론가들은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정당 관계자들은 '지지율'이라는 말의 함정에 속아 그 숫자가 마치 국민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질량의 무게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국민은 대체로 의회를 불신하고 국회의원들을 싫어한다. 우리 세금으로 넉넉히 월급을 받으면서도 따로 억대의 후원금을 모으고, 겸직을 놓지 못해 안달하는 그들은 대체 어느 별에서 왔는가. 의원들은 당선에, 정당은 집권에 눈이 멀어 의회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지 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품위도 권위도 개념도 상실한 국회의원의 무게는 가볍기가 선거철에 날아들었다 흩어지는 봄철 홀씨 같다.

국회라는 이름의 세탁기는 집안의 더러운 빨랫감을 모아 오물이라는 갈등을 걸러내고, 흰옷과 색깔 옷을 가려내며, 청결한 옷을 식구들에게 따듯하게 입혀야 할 의무가 있다. 아쉽게도 우리 국회라는 세탁기에 들어가면 막말과 품위가 뒤엉켜 서로 오물을 묻히고, 염치와 윤리의식, 전문성까지 종종 세탁되어 정파성의 하수구로 흘러내려 가버린다. 그 빨래통에서는 위험한 역사 의식이나 부박한 지적 능력이 통용되고, 무식한 만용도 대접받는다. 그 통에 들어가면 없던 갈등도 생기고, 통합된 민심도 갈라진다. 나는 선택한 기억이 없는데, 스스로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끝 모를 특권 의식과 보호 본능만 그득하다.

정부를 감독해야 할 의회가 오히려 의원들을 선물세트로 엮어 행정부에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미덕'을 서슴지 않으며, 스스로 발의하고 스스로 표결하는 '셀프 표결'의 어려움도 마다치 않는다. 대통령 순방길에 의회 중진들이 모두 나가 배웅하는 '신사다움'까지 겸비한 이들 덕분에 삼권분립은 서양 사상사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이론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 사이에서 고민하는 신생 국가가 있다면 의원들이 줄 입각했다가 선거철에 돌아오는 '유연함'이 강점인 우리 정치를 '지속 가능한 권력 융합 모델'로 눈여겨볼 일이다. 경력 세탁이 필요하다면 우리 청문회 제도를 참고하면 된다.

세탁기만 잘 돌아가도 살림살이가 편해진다. 개헌이며 권력 구조 개편을 고민하는 선량들에게 고장 난 세탁기부터 먼저 고치라고 하고 싶다. 성능도 시원치 않은데 덜컹거리는 소음까지 심한 세탁기 때문에 17년 동안 더러운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국민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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